본문 바로가기

일반상식

백작,공작,남작 중 누가 더 높을까요?(1)

백작,공작,남작 중 누가 더 높을까요?(1)

 

 

성과 정원,역사적인 이름이나 작위,매혹적인 생활방식,이런 것들이 우리가 귀족에게서 느끼는 매력이기도 한데요,그렇다면 귀족이면 귀족이지,백작.공작.남작부인 등은 다 뭘까요?독일 귀족연구소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장 높은 칭호는 황제입니다.이 칭호는 로마제국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름에서 비롯되었습니다.당시 로마는 유럽을 제패한 대제국이었기 때문에,황제라는 칭호는 세계 권력과도 맞물리게 되었습니다.

 

유럽에서 로마의 권력이 와해되고 난 후 황제의 권위를 다시 받아들인 것은 프랑크족이였습니다.서기 8000년경.카를링거 왕조의 제 2대 국왕이었던 카를 대제는 로마 교황 레오 3세로부터 황제 대관을 받았습니다.

 

 

카를링거 왕조가 멸망하고 난 뒤에는,962년 독일의 왕 오토 1세가 새로이 황제가 되었습니다.중세가 끝날 때까지 독일 왕은 교황의 대관식을 받으며 황제에 오르곤 했습니다.

 

한편 함스부르크 왕가는 막시밀리안 1세 때부터 1806년까지 교황의 대관식 없이 황제의 칭호를 썼습니다.프란츠 2세는 로마의 왕관을 내려놓고 오스트리이의 세습 영지들을 황제의 제국으로 격상시켰습니다.독일에서는 독일제국이 막을 내린 1918년까지 황제가 있었습니다.

 

 

그 다음 서열은 왕인데,황제 다음으로 군주국 최고의 직위를 차지합니다.혈족 또는 가문을 뜻하는 고대 독일어 쿤니에서 유래한 말입니다.왕은 한 부족의 우두머리입니다.역사에서는 세속의 지배자(황제)와 종교 지배자(교황)가 왕이라는 칭호를 수여할 권리를 두고 다퉜습니다.

 

독일제국의 마지막 시기에는 모두 4명의 왕-바이에른,프로이센,작센,뷔르템베르크-이 있었습니다.왕은 영주들에 대해 지배력을 행사했고,귀족 신분을 수여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은 공작 입니다.라틴어 'dux'에서 나온 말로,본래는 게르마니아에서 전쟁 시의 군대 지휘자를 일컫는 말이었습니다.나중에는 왕과 백작들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했으며,봉토를 받고 충성을 맹세함으로써 제국에 귀속되었습니다.

 

공작 한명은 수하에 백작 여럿을 거느렸습니다.독일에는 1918년까지 공작과 대공이 존속했는데,이들 역시 다른 사람을 귀족으로 신분 상승시킬 권한이 있었습니다.

 

 

공작 다음의 지휘는 후작 입니다.원래 게르마니아에서는 백성이 뽑은 기사나 군대 지휘자를 나타냈습니다.종교계의 후작(대주교,주교)과 세속의 후작은 서로 구분이 됩니다.1918년 이후 독일에서 통치 권력으로서의 후작 가문은 없어졌지만,그래도 아직까지 후작 칭호를 가진 사름들은 많이 남아 있습니다.